아침에 보니 나름 괜찮았다. 내가 잠을 정말 잘 자서 다행이지, 엄청 시끄러웠을 수도 있었겠다.
키를 반납하고 나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었더니 방향을 알려줬다. 꽤나 오래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역은 나오지 않는다. 중간중간 일본의 일상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의 호텔도 쉬어가기와 숙박이 있나보다.
이마자토역이다. 여기보다 쓰루하시 역이 가까웠다. 역이 숙소에서 보였으니까. 여기를 알려줄거면 쓰루하시 역을 알려주던가.
그리고.... 노선도를 보니 뭔가 이상하다.
긴테츠? 대충 맞는 것 같은데... 급행이 안서는 것 같다.... 쓰루하시 역에서는 급행(Limited Express)가 서지만, 이마자토 역에서는 완행(Local) 밖에 안선다. 사실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다. 이건 내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처음 와서 처음으로 타는 일반 전철이다. 목적지가 뻔한 공항 철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냥 완행을 타야 했다. 어차피 갈아타야 할 분위기. 강냉차. 시원한건 둘째치고 사람이 없다.
긴테츠 나라역에 도착했다. 여긴.... 어디냐?
나라역이다. 지도 한장 들고 여기서 도저히 어떻게 가야할지 모르겠다.
일단 긴테츠 나라역 밖에 나가면 바로 있는 관광안내소에 가서 나라 지도를 받았다. 형편없다.
이건 뭐... 초등학생이 그린 지도 같다. 거리나 지도 그림은 웃기지만, 꽤나 친절한 지도였다. 게다가 한글이었다.
사실 일본어 같은 경우는 한글이나 영어나 크게 차이가 없다. 단지 한자라는 글자 때문에 한글이 약간 유리하다. 이 얘기를 왜 하냐면, 한국어 지도가 대부분 구비되어 있지만 어디든지 한국어 지도가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영어 지도 볼 정도의 각오는 하고 가야 한다. 영어 지도를 봐도 당황해하면 안된다는 말.
보기는 편하지만, 디테일이 굉장히 떨어진다. 그렇다. 자동차 지도만 보던 내게, 조그만 골목길이 안나와 있어서 헤맬 수 밖에 없는 이 지도가 가져다줄 미래는 정말 예측할 수 조차 없는 문제였다.
책에는 아무곳에서나 사슴을 볼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음...
얼마 가지 않아 그냥 길거리에 사슴이 널려 있었다. 우와. 이 동네 신기하다. 일단 나라 박물관으로 갔다. 가는 내내 사슴이 있다.
이번 여행 오기 직전에 산 200mm 렌즈를 처음으로 꺼내봤다. 좋긴 좋네. VR 기능 때문에 딱딱 거리는 소리는 이미 검색을 통해서 알 수 있었고, 손떨림도 적다.
사실 박물관 따위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박물관을 벗어났다(문이 없기 때문에). 정말 어딜 가던지 사슴이 사방에 널려 있다.
토다이지에 이르렀다. 더웠다. 걷는건 힘들었다. 하지만 버스 타는 방법을 모르니 그냥 걸을 수 밖에. 이래서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고 하나 보다. 스님이 마중 나와있다. 시주를 원하는건지... 아무튼 처음 만난 일본 승. 한국과는 다르다.
토다이지. 별로 볼 건 없다. 일본와서 처음 접하는 절인데... 크기만 하고 별로.... 학생들이 많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그림은 저런게 아닌데.... 유명한 관광지니까 가봐야 하나?
난 이런게 좋다.
뭐 엄밀히 따지면 틀린 말도 아니지. 내가 쓰는 영어도 영어권 국가 사람이 보면 저 모양일까?
카스가타이샤로 걸어가는 길목에는 작고 큰 절들이 많았다.
가는 길에 결혼식 사진을 찍으러 온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짧은 영어로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찍으란다.
사실 별로 찍고 싶지 않았으나, 처음 보는 장면이라 찍어봤다. 배경도 생각안하고 대충 찍었다.
대충 몇장 찍고 다시 갈 길을 간다. 정말 대충 찍었다. 남자는 거의 눈감고...
1.2km가 남았단다. 멀다.... 발로 그린 지도 상으로는 가까웠는데...
고양이가 상품처럼.... 전시되어 있다. 깜짝 놀랐다. 엇, 고양이랑 비슷한데... 정말 고양이었다.
산속에 특이한 건물을 발견했다. 가게인지 뭔지 모르겠다.
이쁘긴 하다. 이쁘긴 한데 의욕적으로 찍기에는 내가 너무 지쳐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많이 걸었던 적이 없다.
샹하이에서 걸은 것도 이쯤에서 생각하면 우습다.
역시 내가 원하던 그림은 아니다. 그래서 카스가타이샤에서 나와서 나라 시내 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정말 작은 도시다. 신야스쿠지까지 다녀왔다.
대충 걷다 보니 이상한 호수가 나왔다. 이 때 부터 방향감을 잃었다.
몇 km를 걸은건지... 힘들다. 일단 호수 근처에 벤치가 있길래 앉아서 쉬었다. 200mm 과연 좋구나.
어딘지도 모르겠고, 그냥 막 걷기 시작했다. 동네 골목이다. 동네 골목이라 길이 더 헷갈린다.
그렇다. 지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 이다. 조그만 골목까지 커버를 하지 못하는 관광 가이드맵은 한국에서의 네비게이션에 익숙해진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내가 일본어를 아주 잘해서 길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볼 능력도 안되고. 사실 물어볼 수는 있다. 중국 가서 영어로 질문하고 손짓 발짓으로 알아먹은 적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절을 나와서 일반 시내 번화가 정도의 동네를 만나면서 별로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걷다 보니 시장 골목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시장. 한국 여행을 가더라도 시장은 즐겁다.
하지만 이건... 뭐랄까. 너무 정리된 느낌? 시장 같지 않았다. 재미없다.
알아들을 수 없는 티븨에서 나오던 떡집과 비슷해서 한 번 둘러봤다. 당연히 떡을 판다. 사먹어봤다. 나름 괜찮았다.
이미 점심때가 넘은 터라 배도 고팠다.
뭐가 문제인지 렌즈 플레어가 이상하게 끼네.
시장 골목 구경에, 시내 구경하다 보니 완전히 감을 잃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길 가던 젊은 커플에게 "웨어 이즈 제이아르에끼?" 이건 뭐... 액센트도 그렇도 영어도 아니고 일본어도 아닌... 다행히 먹혔다.
그들의 영어도 중학교 교과서 영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 스트레이또" 고맙다고 답례를 하고 헤어지는데, 내가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건만.. 나에 대해서 뭐라뭐라 하는 것 같다. "쓰고이" 이거 하나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정말 쭉 걸어가니 JR 교토역이 나왔다. 신기하다. '쭉 가라' 한 마디로 역을 쉽게 찾을 수 있다니... 먹히니까 자주 쓰이나 보다.
일본은 철도가 국철과 사철로 구분되서 꽤나 발전되어 있어, 역 이름이 같아도 노선에 따라 거리가 상당히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위에 첨부한 지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긴테츠 나라역과 JR 나라역은 거리가 좀 있다.
비싸다. 210엔이라는 단위 자체가 200원 같아서 속기 쉽지만, 210엔. 2100원이다. 비싸다. 기본이 1200원은 한다.
호류지역에 도착했다. 이 곳 역시 절이다. 막상 출발은 했지만 호류지역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지하철 역에 간이로 설치된 관광안내소가 있었다. 지도가 있냐고 물으니, 무슨 언어를 원하냐고 한다. 한국어로 된 지도를 달라고 했더니, 한국인이냐며 아주머니가 뛸 듯이 기뻐하며, 자신의 한국어 실력을 나에게 시험해 본다. 맙소사...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이런 경우는 수도 없이 많았다. 이 사람들... 한국 남자가 정말 다정하다는 착각 때문에 한국을 좋아하는건지, 정말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가끔 일본에서 한국어를 쓸 기회가 많았다. 사실 일본에서 쓴 언어 순위는... 영어 > 한국어 >>>>>>>>>>> 넘을 수 없는 벽 >>>>>>>>>>>> 일본어 순이었다.
아무튼 그 아주머니에게 호류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냐고 했더니 출구와 버스타는 곳을 알려줬다. 정말 친절하게 알려준다.
아무래도 호류지가 유명한 곳인데, 워낙 작은 동네에 있어서 그런가 버스 정류장에는 아래와 같은 안내가 적혀 있었다.
처음 타보는 일본 버스. 긴장된다. 하지만 요금이 후불이라고 친절하게 적혀 있으니, 내릴 때 170엔 내면 되지 뭐...
버스 정류장에 나 말고 2명이 더 있었다. 이마에 한국인이라고 적혀 있는데, 거기다 한국어로 된 일본여행안내책 까지 들고 있었다.
아마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는 척을 했던 한국인일 것 이다. 처음 타는 버스. 그 버스에 4명이 타 있는데, 1명은 기사고, 1명은 나고, 2명은 한국인. 먼저 말을 건냈다. 그리고 아까 나라에서 산 떡을 건내줬다. 너무 횡한 버스에 한국인인 것을 알아서 그냥 지나치기 좀 그랬다. 알고보니 저분들도 한국인 모르는 척 한다고 한다. 저 분들을 만난 후, 난 관광안내소에서 영문지도와 한국어 지도를 다 받기 시작했다.
어차피 별로 크지도 않은데, 왠지 호류지를 여행하는 내내 서먹서먹할 것 같았다. 안그래도 나라에서 절간에 질린 나는 다른 길을 택했다. 내가 원하는건 일본적인 문화를 보는 것이지 유명한 관광지, 거기다 나라에서 질리도록 본 절을 보는게 내 여행의 목적은 아니다. 나는 호류지 왼쪽길을 선택했다. 호류지 안내지도에 왼쪽이 볼게 더 많아 보였다. 무작정 떠난게 아니라 산책로 코스를 밟은 것 이다.
낯선 환경. 낯선 건물. 낯선 사람들.
낯선 사람들이라 함은 헬멧을 쓰고 교복을 입은 채 자전거를 타는 일본 여학생들이 대표적. 이런건 낯선 풍경이라고 해야 하나?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집집마다 건물 모양이 다 달랐다. 공통되는 나무 장식은 비슷했지만, 대부분 달랐고 그 모양새도 제법 이뻤다. 아기자기한 것이 독특했다.
지도대로 왔다면, 어떤 능이라는데....
관광 안내도에 그려놓을 만한 능인데 이렇게 관리를 하나?
굴삭기를 보니 공사중인가 보다라고 짐작만 할 뿐.
대부분 집이 좋아보였다. 중간중간 허름한 집도 있었지만, 대체로 정원이 있었다.
정원 있으면 좋은 집, 없으면 허름한 집. 우리집은 허름한 닭장.
30여분을 걸으면서 사람을 2명 만난 그 동네. 그 동네 골목이 끝날 때 쯤 음료수 자판기가 있었다.
정말 엉뚱한 위치다. 장사가 될까? 좀 작은 공터에 벤치도 있다. 거기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으니까 어떤 아줌마가 쳐다본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사람이다. 몸보다 큰 배낭을 메고, 벤치에 앉아 음료수 캔을 뚫어져라 바라보며(아는 글자가 하나라도 나올까 해서 계속 살펴봤다) 있는데, 더위에 쩔어 그 인상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으니... 20kg짜리 배낭을 등메 짊어지고 있으면, 표정이 밝아질 수가 없다. 뭐 사실 가방 때문인지, 얼굴 때문인지 시선은 이미 여러번 받았다.
무슨 호수 미니파크라고 적혀 있었다. 미니파크.... 좀 쉬어가려고 했더니 그늘 하나 없다.
공원의 시작에서 5걸음만 가면, 공원의 끝을 만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미니파크다.
일본 마을의 한가로운 골목.
오른쪽 사진은 스트래칭 하듯이 고개를 우측으로 돌리면 된다. 가끔은 아나로그가 좋을 때도 있다.
HTML 태그로 돌리는게 있는게 기억이 안난다.
아래 절을 볼 때 까지는 그래도 행복했다. 한가로운 일본 마을. 여유가 느껴지며, 아기자기한 이쁜 건물들이 좋았던 그 곳. 이라며 낭만적으로 추억할 수도 있는 곳 이었다.
하지만 비극은 이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부터 시작된다.
물론 바로 시작은 아니다. 우체국 같은 건물을 지나치며 한 5-10분 정도 걸으면 이제 논이 시작된다.
끝도 없다. 사실 거리는 그렇게 길지 않았던 것 같다. 단지 하루종일 20kg짜리 가방을 메고 다닌 탓에 지친 몸.
볼거리라고는 노랗게 익어가는 벼 밖에 없는 논. 정말 지루하고 힘들었다.
이 포인트를 기점으로 좌회전을 하면 될 것 같다. 저 멀리 기차길도 보이는게 제대로 온 것 같다.
지도는 아까 호류지역사에 있는 간이 관광안내소에서 받아온 지도다. 지도에 나온 정보가 여기까지 밖에 없다.
사실 이 논이 과거 녹봉(맞나? 관리들에게 땅 나눠주는 거)으로 나눠주던 땅이라 한다.
역시 주변에는 온통 논이다. 이번에 좀 다른게 있다면 아까 길에서 보았던 수로같은게 이번에는 개천 정도로 커졌다. 아까는 진짜 수로였고, 이번에는 좀 큰 수로 혹은 개천 같다. 아무튼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지도와 비교할 건물도 없고(지도에도 없고, 내 눈에 보이는 건물도 없다), 그냥 걸을 뿐 이다. 옆에 기차길은 그래도 꾸준히 보이네.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한참을 걷다 보니 낚시하는 애들이 보인다.
낚시하는 꼬맹이들을 지나고 나니 마을 나타났다. 하지만 역시 관광 가이드맵에는 이런 마을 놀이터 따위가 나올리가 없다.
일단 기차길을 향해서 걸었다. 기차길 따라 걷다 보면 역이 나오겠지. 정말 어딘지도 모르겠고 힘들다. 겨우겨우 JR 호류지 역에 다시 도착했다. 벤치에 앉아 멍하니 쉬다가 음료수 좀 마시고 JR 교토역 행 표를 샀다.
JR 교토 역에 도착한 나는 내일 도쿄로 이동할 신칸센 기차표를 구매했다. 거의 140천원 돈이다. 비싸다.
2시간 정도 걸리고, 도쿄에서 이케부쿠로로 이동할 시간을 생각해서 오후 5시 정도로 예약했다.
노조미를 예약하는데, 모니터를 보니 히토리외 기타 신칸센 까지 한 시간에 정말 많은 기차가 다닌다.
이 많은 기차들에 사람이 다 찰까?
JR 교토역을 빠져나와 두리번 거리는데, 교토 타워가 보인다. 실제로 보면 굉장히 우습다. 저걸 타워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교토 타워를 보니 잘못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대 편이야.
다시 교토역사로 들어갔다.
역사 내부가 꽤나 복잡해서 반대편으로 나가는데 30분 정도가 걸렸다.
교토역 구석탱이에 있는 에르-인 호텔.
비즈니스 호텔이고, 일본어 홈페이지에 들어가 쩔쩔매면서 웹상으로 예약한 곳 이다. 비교적 꽤나 큰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영문 예약 페이지는 없었다. 그리 어렵지 않게 체크인 할 수 있었다.
체크 인을 하고, 방에 짐을 풀고 나와 근처에 식당 위치를 물었다. 영어 발음이 문제지 제법 영어를 하는 직원이 많았다. 오히려 나에게는 듣기 편한 발음이지만, 문제는 어휘에서 쥐약. 짧은 영어를 만나야 편한데...
나오면서 호텔 직원에게 근처 식당을 물었다. 근방 지도를 한 장 주면서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직원이 알려준 우동 집을 갔다. 별 메뉴를 다 판다. 나왔다. 이런 집은 싫다. 지하로 내려가 어떤 빌딩 아케이드로 갔다.
라멘 집이다. 한바퀴 돌고 라멘으로 결정.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을 보고 시켰다. 2번 다시 먹고 싶지 않은 맛 이다. 사실 맛없는 라면이 아니다. 닭국물인데, 내가 원하던 맛이 아니라 실망이 클 뿐, 깔금한게 정말 괜찮은 맛 이었다. 일본은 역시 혼자 식사하는 사람이 많았고, 식당 내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흡연이 가능했다.
아케이드를 나가기 전에 내일 아침 식사용으로 도넛 몇 개를 사갖고 호텔로 돌아갔다.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다리가 너무 아프다 못해 감각이 없다. 내일을 기약하며 빨리 잠들고 싶지만, 너무 피곤해서 잠이 안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