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은 시간까지 발표자료를 만들었다.
발표 자료와 스크립트 작성. 원래는 도착하는 날 마무리 지었어야 하는 일 인데, 알다시피 21일은 악몽같은 날 이었다. 10시 정도에 발표자료를 마무리 짓고, 대충 읽어봤다. 뭐 크게 무리없어 보인다. 내 눈에는 그래 보였다.
정장을 입고 방을 나서 발표장 분위기를 보러 갔다. 역시 다들 여행갔는지, 발표자 외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중간에 도망치기 힘든 구조다. 나 혼자 들어가기로 했다. 발표 끝나는 즉시, 정주 공항으로 가야 한다.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동욱이형 방으로 옮긴 다음, 식당으로.
여전히 거지같은 식단... 어제는 디저트로 주는 손톱 크기의 케이크로 배를 채웠으며, 저녁은 연회가 있었지만, 술과 이상한 음식 하나로 배를 달랬다. 채우지는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어제보다 더 안좋은 것 같다. 먹을만한 것은 사라지고 어제 먹었다 후회한 음식들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난 새로운 음식이 보이면 먹어보고 싶은 충동에 휩쌓이지만, 이미 새로운 도전은 무의미 하다. 오늘도 난 케익으로 배를 채웠다. 스프라이트에 질려 쥬스를 먹었고, 약 20년전 가루쥬스를 떠올린다. 20여년 전 어릴적 먹던 오렌지 쥬스 분말... 그 오렌지 쥬스를 계속 먹었다.
적당히 배를 채우고, 동욱이형 방에서 잠깐 머물렀다 발표장으로 향한다. 발표와 모든 일정이 끝난 연세대 팀은 놀러간단다. 영어 잘하던 석사 좌장 대행... 내가 발표하는 세션에 들어온단다. 농담인거 알지만 농담이 농담처럼 안들린다. 모든 변수들이 두렵다. 잘 할 수 있을까... 거기다 오랄 디펜스도 나 혼자서 해야한다. 대충 파악한 분위기는 한국 학회랑 비슷하다. 모르는 건 나중에 메일로~ 단지 언어가 영어일 뿐.
내가 차례가 왔는데, 기름지게 생긴 영국에서 온 중국인이 급하단다. 나한테 양해를 구하지만,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항에 빨리 가야하는 상황인데, 양보할 리가 없지.
적당하게 버벅거리며 발표를 하는 도중에...
"SECS-I use RS-이삼이..."
맙소사. 저건 한국어. 대충 무마한다. 발표를 마치고, 내 부족한 영어 실력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좌장이 질문을 한다. 니 논문의 요점은 뭐냐!
바디랭귀지와 유아용 영어를 써가며 오랄-디펜스를 한다. 다행히 한국말은 하지 않았다.
적당히 요점이 설명됐는지, 끝낸다. 사실 이해가 안됐다 하더라도, 귀찮아서 빨리 끝냈을 거다.
동욱이형 방에 들러 정장을 벗고 우리는 정주 공항으로 가기 위해 로비로 갔다.
혼다 검은차. 역시 어코드.
기사는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말을 하고 싶어 하지만.... 정주를 가는 내내 정적만이 흐른다. 중간중간 종섭이가 회화 책을 펴서 기사 아저씨의 적적함을 달래준다.
고속도로는 지난 번 용묵이형이 말한대로 끔찍하다.
반대편 차선에서 주유하고 중앙분리대 없는 곳 까지... 역주행하며 달려가는 트럭.
고속도로변에서 간이 의자를 내놓고 가족 나들이하는 가족들.
크루징 컨트롤이 빛나는 정속 주행.
중국 차들은 고속도로에서 대부분 정속주행을 했다.
간간히 역시 리무진으로 보이는 검은색 차들이 보였지만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크게 무리해서 과속하는 차는 없었다.
그래서 신호등이 별로 없구나... 꽤나 괜찮네.
하지만... 방향 지시등 없이 차선 변경하는 트럭들.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는 도로 보수 공사.
고속도로 진입 전 무서운 자전거들..
썩 명쾌하지는 않구나.
150km 정도 되는 거리는 2시간에 걸쳐서 도착했다.
비행기는 7시 10분 이지만, 중국의 시스템에 크게 상처받은 우리는 4시에 도착한 것도 매우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빨리 표 확인하고 싶은데... 늦어질수록 마음은 불안해진다.
'또 종섭이 표 잘못됐으면 어쩌나...'
기다리는 동안 공항 안 매점들을 돌아다녔다.
쿠바의 운동 선수들을 봤다. 무슨 종목인지는 몰라도... 매점 내부를 휘저으며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
점심도 빈약하게 드신 우리는 배가 고프다.
1층에 가보니, 중국 패스트푸드 식당이 있다. 용묵이형에게 거기서 간단하게 배좀 채우자고 제안했으나, 뭔지 모를 중국식 향료에 충격이 몹시 큰 용묵이형은 싫단다. 나 역시 그에 대한 충격이 컸다. 편식이 심한 나이지만, 케이크로 배채우는 것이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 "그럼 뭐 드실건데요?"
형 "기내식"
나 "동방항공인데?"
형 "..."
형 "........."
나 "그러니까 먹어요"
형 "그래도 싫어!"
결국 물과 콜라로 배를 채운 우리는 또 기다린다. 이번 중국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별 문제 없이 체크인을 완료했다.
게이트 창 밖으로 비행기가 도착하자 짐을 실은 차가 달려간다. 개인 짐이 한 7덩어리 밖에 안된다. 우리 짐 3개가 보인다. 컨테이너도 아니고 래핑도 안된 상태로 짐 끌고 다니는 차에 우리 짐이 덩그러니 실려있다.
앗, 아까 그 쿠바 운동선수들... 여자들인데 덩치가 내 2배다. 게이트 앞 매점에서 또 물건을 사고 있다. 아무리 봐도 똑같은 거 밖에 안파는데... 물사러 왔나..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비행기에 탑승한다. 타는 순간 역한 냄새가 난다. 화장실의 그 냄새 같은게 지속적으로 난다. 거지같은 동방항공. 동방항공이... 대한항공급이라고?????
#4 상해에 도착하다.
샹하이 공항에 도착했다. 어딘지 모르겠지만...
버스를 타는데... 어렵다.
짐이 많아서 2자리씩 차지했는데, 중국인이 짐 있는 곳에 앉겠단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 앉아 자기 멋대로 짐을 통로로 빼더니 자기 일행과 같이 앉는다. 중국도 아줌마가 무섭다.
홍치아오 공항은 워낙 사람이 많아서 택시 잡는데 오래 걸린다고 시내 중심가 가서 택시를 잡아야 했다.
중심가라는데 어디지... 아무튼 그 곳에서 택시를 잡는다. 현지인에게 많이 뺏겨가며, 힘들게 잡았다.
과연 우리 짐이 다 들어갈까? 트렁크가 열리는 순간... 놀랬다. 우리 짐이 다 들어간다.
진장호텔. 영어를 그럭저럭 하는 직원이 한명 있다.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하고 방으로 이동. 좋다. 깔끔하니.
짐을 푼 우리는 간단하게 배를 채울 곳을 찾는다. 하지만 아는 곳이 있을리 없다. 맥주나 하면서 간단하게 먹자. 근처 식당은 보나마나 뻔할테고...
프론트에 가서 근처에 bar나 pub을 묻자... 아까 그 영어 꽤 하던 직원이 종이를 꺼내더니 적으란다.
bar - beer
pub - dinner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고, 대충 막 썼다.
pub은 모르겠고, bar는 신천지를 가란다. 2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네. 택시를 타고 신천지로 이동한다.
한바퀴 돌아보니 꽤 작다.
적당한 바로 들어가 우리는 맥주 500ml를 시키고, 먹는데 자리가 심상치 않다. 테이블 바로 앞이 무대다.
역시나... 노래가 시작된다. 신나는 라틴. 내가 아는 노래들이 나와서... 더욱 신나게 분위기를 즐겼다. 몸치인 탓에, 분위기만 즐겼다.
이마에 한국인이라고 써 있는지, 우리를 보며 "안녕하세요"란다. 분위기만 즐기는 우리에게, 나오라고 손짓한다.
어떤 여자 2명이 나오는데, 정말 이마에 한국인이라고 써 있다.
가수는 우리에게 그 여자 쪽을 가리키며, "사랑해요" 하트 손짓 등 별 짓을 다 한다.
그 동네 술집은 2시 정도면 끝나더군. 시시해. 한국인으로 보이는 외모를 가진 그 여자 둘과 어떻게 여행하는지 간단하게 얘기하는데, 주워들은 몇 가지를 얘기하자...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나보고................
"현지인"
이란다. 아무튼 오늘 긴 하루는 이렇게 끝난다.